[미국지부] 최우주 필립보 신부(지원사제)

출처: 서울대교구 주보(2019년 6월 30일 발행, 5면)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글. 최우주 필립보/ 골롬반회 지원사제, 서울대교구

안녕하세요?
제가 있는 이곳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길게 드리워진 리오 그란데(‘큰 강’이라는 뜻)를 끼고 있는 두 도시 엘 파소와 후아레즈는 긴 장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강폭이 넓지 않아 큰 목소리로 부르면 반대편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이고, 실제로 두 도시는 아주 가까워 ‘쌍둥이 자매’ 도시라고 불리곤 합니다. 현재 엘 파소는 미국 텍사스 주에 속한 도시이고, 후아레즈는 멕시코 치와와 주에 속한 변두리 도시입니다.

엘 파소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통행’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중남미에서 몰려오는 많은 이민자들과 멕시코에서 생산한 물품을 싣고 미국을 향하는 대형 트럭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여전히 엘 파소에는 서부 개척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멋진 가죽 모자와 가죽 부츠를 판매하고 수선하는 곳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새로운 땅을 찾고 일구기 위해선 기약 없는 일정이 될 수도 있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기에, 새로운 길을 떠나기 전 신발과 말의 편자, 그 밖의 물품 등을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 도시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이들은 대부분 ‘신발 끈이 풀린 이들’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신발 끈을 뺏긴 이들’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민자들’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주를 결심한 이들의 여정에 동행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양쪽 도시를 다니며 이들을 위한 쉼터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배고픔, 폭력에 못 이겨 이주를 선택한 이들은 어린이부터 임산부,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합니다. 국가도 브라질,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쿠바 등 중남미 곳곳에서 옵니다. 이들 모두가 미국 국경에 도달하면 미국 이민국 내지는 국경수비대 및 세관을 통해 신발 끈을 뺏기게 됩니다. 미국에 워낙 불법체류자가 많아서겠지만 이들의 도주를 우려해서인지 신발 끈을 압류합니다. 처음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쉼터에서 생필품을 나눠줄 때 유난히 신발 끈을 찾는 이가 많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다양한 사연을 들어보면 보통의 우리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족의 소중함과 그들의 행복을 위해 보다 나은 삶을 선택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매한가지라는 사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불법체류자 내지는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난민 문제가 언론에 부각되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현재 걷고 있는 삶의 길에 대해 고민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엘 파소…! 인생은 결국 지나가는 것’이라는 표현은 때론 관조적인 혹은 깊은 연륜에서 피어난 금언일 수는 있겠으나 막상 뜨거운 땡볕 아래 목마름을 참아가며 며칠을 걸어온, 그리고 여전히 걷고 있는 이들을 바라볼 때면 어디선가 이들에게 물 한 모금과 신발 끈을 건네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최우주 필립보 신부 | 미국 엘 파소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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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T14:24:31+09:002019/07/01|골롬반 소식, 선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