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류선종 안드레아 신부_꺅갸꺅갸

“꺅갸꺅갸”

흡사 누가 꺽꺽대며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까치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저도 이곳 본당에 오기 전까지는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소리는 제가 본당 어르신들을 차에 모시고 운전할 때, 앞에 가는 차가 굼벵이처럼 기어가면 농담 삼아 하는 말입니다.
이제 좀 짐작이 되시나요? 네, 바로 ‘빨리빨리’라는 뜻의 ‘객가어’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면 신자분들은 “아니 신부님, 대체 그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하며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터우펀 성당 신자들과 함께

저는 대만의 작은 도시 터우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그냥 중국 사람들이 사는 곳 아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대만은 기차에서 다섯 가지가 넘는 언어로 안내 방송을 할 만큼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긴 역사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존하며 융화된 나라입니다. 크게 나누어 봤을 때 ‘원주민’, ’객가인’, ‘민난인’, 훗날 장개석과 함께 대만에 들어온 ‘외성인’들이 ‘같이 또 다르게’ 살아가는 곳이 바로 이 대만입니다.

터우펀은 객가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 본당 신자 대부분이 객가인입니다. 물론 원주민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도 상당히 많습니다.
본당 신부로서 이분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분들도 외국에서 온 신부가 자신들의 문화를 이해해 주고 존중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루는 우리 본당의 원주민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자꾸 할머니께서 “아리가또, 아리가또(일본말: 감사합니다)” 하시는 겁니다. 아니 왜 자꾸 일본어를 하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자기 가정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일본어로 표현하며 자랐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일제가 대만을 지배할 때 받은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언제는 가정 방문을 갔는데, 신자 한 분이 “신부님, 오늘은 객가어로 기도를 해도 될까요?”라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제가 흔쾌히 그러자고 했더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아주 편하게 성모송을 다 같이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에 모인 모든 분들이 객가인이었습니다.

“조상의 논밭은 팔 수 있어도 조상의 말(言)은 팔 수 없다.”는 객가인 속담이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는 오묘하고 알쏭달쏭한 방법으로 우리 안에서 표현되고,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야 그 사람들이 가진 문화적 배경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그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한 하느님을 함께 찬미하는 것을 목격하고 동참하며 격려하는 것은 선교사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자 사명입니다.

물론 문화와 언어가 다른 곳에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대만에 왔을 때 마트에서 닭고기를 사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점원에게 우스꽝스럽게 닭 흉내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흥미롭고 보람되기도 합니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레지오 회합에서 단원들과 함께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있는 류선종 신부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만에서도 ‘객가어’, ‘민난어, ‘원주민 부족어’ 같은 다양한 말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40대 젊은 사람들만 하더라도 이런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습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겠지만, 대만 사회 내에서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오랫동안 보존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더불어 저도 “꺅갸꺅갸(빨리)” 이 나라 언어를 더 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류선종 안드레아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2017년 2월에 사제품을 받고 그해 10월 대만으로 파견되었다. 현재 신주교구 터우펀 본당에서 주임신부로 일하고 있으며, 이주민 사목에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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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T09:16:56+09:002019/10/23|골롬반 소식, 선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