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_정의균 신부

피지에서 선교하고 있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정의균 신부 ©정의균 신부

작년 대림절이 시작되자마자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성탄 기념 잔치”라는 제목으로 온 편지에는 저를 비롯한 본당 청년들을 초대하는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피지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잔치를 한다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다 함께 참석하기에 저 역시 반갑게 초대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계속 읽던 중 이 잔치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임이 아님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잔치 제목 아래 “종교간의 대화”라는 부제목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대축일인데, 종교간의 대화라…, 연결 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잔치를 한다니까 가보기라도 하자!’ 하고 본당 청년들과 함께 성탄 기념 잔치가 열리는 수바 대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강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옆 본당 청년들도 보였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많았습니다. 잔치가 시작되고, 본당별로 무대에 나와서 준비한 공연을 발표하였습니다. 성탄절에 맞는 성극도 하고 성가 합창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골롬반회 피지지부의 우리 신학생들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여느 본당의 성탄예술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실 겁니다.

피지 수바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있었던 성탄예술제 ©정의균 신부

인도계 피지 어린이들이 공연한 성탄 성극 ©정의균 신부

그런데, 사회자가 “다음은 힌두교인들이 우리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공연이 있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힌두교? 아니, 우리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 하며 다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궁금해하고 있을 때, 힌두교 사람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곧 그들을 따라서 성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또, 힌두교 신자들은 다음 무대에서 성탄 성가에 맞추어 인도 전통춤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우리가 하나가 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성탄을 축하하러 온 힌두교 신자 어린이들이 공연에서 “시바”신의 모습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의균 신부

한국에서도 음력 4월 초파일이 되면 봉축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몇몇 천주교 성당 정문 위에 걸어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성탄절에는 몇몇 사찰에 걸린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기쁜 날을 축하하는 모습을 한국에서 종종 접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는 피지의 성탄절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본당 청년들과 함께 힌두교 사원을 방문했을 때. 정의균 신부 옆은 힌두교의 제사장 ©정의균 신부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서로가 믿고 있는 종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평화를 찾는다면 이곳 한여름의 성탄절처럼 참 평화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참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다른 신앙 때문에 일어나는 전쟁으로 죄없이 죽어가는 많은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정의균 가롤로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2014년에 사제품을 받고 미얀마에서 활동하였으며, 2017년 남태평양 피지공화국에 파견되어 현재, 수도 수바 시에 있는 레왕가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2020-07-15T11:59:46+09:002020/04/01|골롬반 소식, 선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