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선교잡지] 도봉에서 온 손님들

『더파이스트The Far East』(아일랜드 골롬반회 잡지, 196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지 베드로 (Peter Tierney, 1931~2009) 신부

1968년 12월 1일에 낯선 두 사람이 본부로 찾아왔다. 낡고 해진 한복을 입은 한 사람은 나이가 꽤 많아 보였고, 동행한 이는 훨씬 젊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은 분명히 불편했을 것이다. 내가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둘은 일어나서 허리를 크게 굽혀 인사했고, 바쁜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찾아주어서 영광이라고 말하며 자리에 앉도록 했다. 틀림없이 무슨 문제나 부탁이 있는 것이 두 사람 얼굴에 씌여있었다. 실례가 될까 봐 한국의 풍습대로 방문 이유는 묻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그들에게 신자들이냐고 물었는데, 젊은이가 노인의 얼굴을 보았고, 그제야 노인은 크게 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네, 저희는 신자들이고 서울대교구 대주교(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신부님께 가보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저희는 걸어서 약 두 시간 걸리는 ‘도봉(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이라는 곳에서 삽니다. 개발 지역이라서 공장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사방에서 일을 찾는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이사 온 사람 중에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주일 모임을 갖기로 했고, 신부님이 안 계시니 모여서 기도라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지 한참이 되었고, 모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그 집도 비좁게 된 모양이었다. 신자가 400명 있고, 30여 명이 세례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저희가 사제 없이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해서 이 젊은이와 제가 대표로 선출되어 대주교님께 가서 사정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주교님은 보낼 신부가 없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대주교님이 ‘희망이 하나 있긴 한데, 골롬반 신부들에게 가서 부탁해 보면 어떨지, 혹시 보내줄 신부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면서 여기 주소를 알려 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왔습니다.” 

도봉동성당 견진성사를 마치고(1977년). 성사를 주례한 경갑룡 주교와 당시 주임이었던 골롬반회 전 야고보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말을 마친 노인은 조용히 기다렸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다. 나는 먼저, 그들의 신앙과 열성과 노력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어서 고맙다고 마음을 표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도와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막 한국에 온 젊은 선교사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니 고해성사나 강론에 도움이 안 될 것이고, 본부에 있는 두 신부인 현 파트리치오 신부와 나는 한국지부의 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깊이 생각하는 듯했고, 잠시 후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부님,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성체성사가 필요하고, 일 년 이상 고백성사를 못 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를 기억해 주십시오. 매 주일 오전 10시에 우리 집에서 신자들이 모이니 주일 하루만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오신다면 무척 기쁘겠습니다.” 곧 성탄 대축일이 가까이 오는데, 그들은 분명히 곤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 성탄 축일에 내가 가서 미사를 하고 판공성사를 주겠다 약속했다. 그다음은 하느님의 손에 맡기자고 말했다. 그들은 지도 위에 동네 위치를 알려 주고 돌아갔다.

현 파트리치오 신부와 상의하여 다음 주일에 우리 둘이 같이 도봉에 갔다. 아침 9시, 마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환영해 주었다. 곧바로 현 신부가 방에서 고백성사를 주었고, 나는 미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방의 미닫이문을 열고 마당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미사를 드렸다. 아주 감동적인 체험이었다. 대략 130명쯤 영성체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훨씬 더 많이 했다. 어른들 사이에 어린이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가 끝났는데도 고백성사 줄은 끝나지 않았다. 옆집에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먹는 동안에 신자들은 먹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미사를 같이 드리게 된 것에 감사를 표했고, 그들의 노력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청하며 강복을 했다.

그다음 주일부터 우리는 이 새 공동체(훗날 서울대교구 도봉동성당)를 위하여 매 주일에 미사를 하러 갔다. 그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의 성당이 생기고, 그들의 신부가 거처할 때까지 우리는 기도하며 노력을 다할 것이다.

도봉동성당 축성식(1991년 12월 1일). 김수환 추기경과 골롬반회 현 파트리치오 신부(오른쪽), 보좌 고 가비노 신부(왼쪽)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해설: 지 베드로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1955년에 서품을 받고 1958년 한국에 왔습니다. 서울·광주대교구와 부산·인천교구에서 본당사목을 하였습니다. 이 글은 한국지부장으로 일할 때 쓴 글인데 이 시기에 그는 서울과 경인 지역 여러 곳에 성당 부지를 마련하고 성전을 건립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였습니다. 교회법을 전공했던 지 베드로 신부는 광주대교구 법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골롬반회는 도봉동성당을 설립하여 1970년 강 디오니시오 신부를 시작으로 1996년까지 기 바오로, 전 야고보, 천 요한 신부 등 10명이 사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본당 출신인 권태문 사도요한 신부가 골롬반회 회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