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주민과 함께 걷기_권세오 곤잘로 신부

권세오 곤잘로 신부 / 번역·배영재 요세피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남미 칠레 출신으로 2016년에 칠레에서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한국에 왔다. 대전교구 천안불당동 성당, 목포가톨릭대학교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광주대교구 순천 이주민사목센터에서 이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2019년 초에 저는 목포가톨릭대학교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스팸 전화일 거라 짐작하여 받지 않다가 세 번째로 걸려온 전화를 결국 받았습니다. 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말 대신 놀랍게도 목포에서 이주민 사목을 하는 김도균 안셀모 신부님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신부님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다양한 억양으로 구사하는 영어로 인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돕겠다고 했고, 주일에 미사를 드리러 목포 이주민사목센터로 향했습니다. 그 전화 한 통이 촉매제가 되어 제 선교 여정에서 인생을 뒤바꿀 만한 뜻밖의 경험을 선사하리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주민사목센터에 도착했을 때 출신지가 다양한 이주민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랍고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목포에서 개최되고 있는 유엔 회의에 참석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성령께서는 평상시 시야에서 벗어난 한국의 일부를 보도록 저를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의 사목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열망이 제 안에서 피어나는 것을 깨닫도록 해주셨습니다 작년 가을, 3년 만에 첫 본국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칠레로 떠나기 얼마 전에 저는 골롬반회 한국지부장에게 이주민 사목을 할 수 있도록 임명해 주십사 요청했습니다. 제 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고, 저는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대교구로부터 이주민 사목 발령을 받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관여하시는지라 인간의 계획과 달리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죠. 그사이 다른 사제가 목포로 발령받은 것을 제가 몰랐던 것입니다. 광주대교구 옥현진 주교께서는 제게 골롬반회에서 지난 60년간 활동해본 적 없는 순천으로 가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며칠간 고민해 보고 자문한 끝에 저는 주교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순천에 오게 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9월 27일 제106차 세계 이민의 날을 앞 두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피난을 강요당하다>라는 주제로 예수님과 그의 부모님의 경험에 비추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난민(실향민)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곳에 오고나서 몇 주간은 유독 바빴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순천 이주민사목센터의 김 마리 우성 수녀님께서 전화를 걸어 분만이 시작된 베트남 여성을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비록 당나귀를 끌고 간 게 아니라 봉고차를 몰고 가긴 했지만 저는 그때 마리아를 나자렛으로 모시고 간 성 요셉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여성분이 낳은 쌍둥이, 그 아름답고 천사 같은 아기들이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했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출산인데도 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출산한 외국인 여성 노동자는 비자나 이주민 신분에 문제가 생겨 종종 해고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산모의 출산을 돕게 된 일은 제 기도 중에 깊이 자리 잡았고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이사9,5)가 새롭게 다가오도록 해주었습니다. 저는 순천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이주민 자녀들이 성체를 모실 수 있게 준비시키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활동은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다양한 만큼 아주 흥미롭습니다. 필리핀, 베트남, 동티모르, 동유럽, 남아프리카, 미국, 영국, 아일랜드에서 온 다양한 이주민들에게 사목을 할 수 있어 저로서는 대단한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이 일을 헌신적으로 해오신 광주대교구 순천 조곡동성당 고재경 레오 신부님과 순천 이주민사목센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순천에서 만나고 있는 이주민들과 함께 음식 나눔을 하였을 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사목 활동도 코로나로 인해 전혀 새로운 차원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평상시 임무가 축소됐고 제 사목 활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병자들과 성체를 나누러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불가능해졌으니까요. 앞으로 코로나가 어떤 여파를 미치게 될지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계시는 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서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누면서,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 세상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증명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우리를 북돋습니다. “‘출발’하는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교회입니다. 인류의 변두리까지 가닿으려고 다른 이들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은 정처 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걱정을 내려 놓고 걸음을 늦추어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편이 더 좋습니다. 또한 다급한 일들을 멈추고 길가에 남겨진 이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복음의 기쁨』 46항).

2020-09-29T11:58:56+09:002020/09/21|골롬반 소식, 선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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