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왕 신부의 선교 여정 50년-『골롬반선교』 2017년 봄호

민수왕(Patric Murphy) 신부는 아일랜드 땅끝 마을, 조상 대대로 어부인 가정에서 태어나 늘 바다를 벗하며 살았다.
7살 때 외갓집에 갔는데 낯선 신부님이 계셨다. 호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5년 만에 본국 휴가를 온 작은 외할아버지였다.
배를 타고 3개월 걸려서 왔다고 했다. 어린 민수왕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였고, 선교사의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그때부터 바다 건너 나라에서 활동하는 선교 사제가 되고 싶었다.

고3 때, 아일랜드에 많이 있었던 수도회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시기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 친구가 골롬반회 신학교 음식이 좋다고 했어요. 내가 가야 할 곳은 바로 그곳이다! 했지요. 고등학교 기숙사 밥은 별로 안 좋았거든요.”

그런데 친구들 말이 골롬반회에 가면 중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미지의 땅으로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첫 방학에는 집에도 안 보내 주고 피정을 시킨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골롬반회에 가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러나 몇 주 안으로 마음은 바뀌게 된다. 골롬반회 신부가 학교로 찾아와 학생들에게 골롬반회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는데, 다시 마음이 끌린 것이다.
그 골롬반 신부와 개인적으로 면담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친구들과 당구장 가기로 한 약속이 떠올랐다.
당구장이냐, 골롬반회냐 갈림길에서 고3 민수왕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당구장을 선택했다.

“친구들과 놀러 나가버린 철없는 저였지만, 결국 골롬반회에 왔어요!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렇게 움직이지요. 미약한 인간성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시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 시시한 것은 없어요. 우리 눈엔 시시해 보여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중요하지요.”

친구들 말대로, 골롬반 신학교의 음식은 과연 아주 맛있었다!

1967년 12월 20일 사제서품식(세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민수왕 신부)

“서품식 때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겸손하고 검소하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칭찬하고, 웃음 속에 재미있게 살며, 신자들과 함께하는 사제가 되고 싶었어요.”

한국으로 발령받았을 때 아주 기뻤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낯선 언어와 문화 충격으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신감도 잃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동료와 선배 사제들의 도움으로 차츰 잘 적응해 갔다. 첫 본당은 골롬반회 오 안드레아 신부가 주임으로 있던 영산포성당이었다.

영산포 본당 시절, 오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오 신부님은 저에게 유교에 대해 알려 주셨고, 실천으로 보여 주었어요. 덕분에 낯설기만 했던 한국 문화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일랜드식으로만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한국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두 번째 선교지는 흑산도였다. 신자들과 둘러앉아 소주 마시고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중 한 사람과 특별히 친해졌는데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을 좋아해 사람들이 ‘밥벌레’라고 흉보던 이였다.
“그를 스승으로 택했어요. 얼마나 말을 재미있게 잘했게요. 한국에 관해 이것저것 많이 알려 주었어요.
굿판에 데려가서 무당도 보여 주고, 사주, 귀신 이야기도 들려주었어요. 참 재미있었어요.”

흑산도에 있을 때 공소 열세 군데를 다녀야 했다. 어부의 후손답게 민수왕 신부는 직접 배를 몰고 섬들을 다녔다.


“제가 선장이 된 듯 파이프 담배를 탁 물고 키를 움직였지요. 가끔 배 안에서 사람들과 소주 한잔했어요. 안주는 양파뿐이었지만 맛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흑산도에 있으니 회를 실컷 먹겠다고 말했죠. 아니요, 구경도 못했어요. 고기를 잡으면 큰 도시로 보내야 했으니 그곳 사람들은 정작 못 먹었어요.
그 정도로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흑산도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어요.”

전남 영광에 있을 때는 나환자를 돕는 일을 하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요. 그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어요.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땅 천 평을 r구입하기로 했지만 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노력 끝에 당시 아일랜드 골롬반회와 호주의 지부장이 각각 어렵게 돈을 구하여 보태 주었다.
영광성당을 떠나기 전까지 나환자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빌린 돈도 다 갚았다. 후임으로 온 신부가 그 땅 위에 좋은 집을 지어주어 기뻤고, 뿌듯했다.

문학에 조예가 상당했던 그는 네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첫 번째 책의 제목은 『두 개의 세상』이다. 본당사목 중에 보고 듣고 배운 내용을 담았다.
한국과 아일랜드의 비슷하거나 다른 문화를 책에 실었고 한국의 풍속과 전통도 소개하였다. 흑산도의 스승이 알려 준 한국의 귀신 이야기도 썼다.
이 책은 아일랜드에서 문학상을 받았고 아일랜드 5개 대학에서 교과서로 채택되어 쓰이고 있다.
신학생 시절부터 단짝인 민 디오니시오 신부는 민수왕 신부를 책 읽기를 좋아하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표현했다.

“민수왕 신부님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재미있게 잘 전달해 주었어요.
토론도 잘하고, 연극배우로도 활동할 만큼 재능이 많았어요. 강론도 얼마나 잘했는데요. 신자들이 집중할 수 있게, 마치 배우처럼 했지요.
밖에서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와 달리 실내에서 책 보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는데, 한번은 축구팀에 인원이 모자라 골키퍼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경기장까지 업고 가달라는 조건을 걸더군요. 우리는 민수왕 신부를 어깨에 메고 모셔와 경기했어요. 그랬는데 골을 몇 개나 허용해 우리 팀이 졌어요.
경기가 끝난 후, 우리는 민수왕 신부를 다시 어깨에 메었다가 길에 던져 버렸습니다.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이 많습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좋은 친구이며 사제입니다.” (친구 민 디오니시오 신부)

        <

민수왕 신부에게 금경축 맞은 소감을 물었다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오래 살았다! 신부가 잘되었다! 한국에 잘왔다!” 기대하지 못한 시간이었어요. 50년 사제 생활에서 잘된 것도, 잘 안된 것도 있었지요. 후회가 많아요. 그런데 이 후회는 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이 모든 시간에 감사드리고, 성찰하면서 50년을 기념하겠습니다.”


2020-09-10T11:59:43+09:002020/09/08|골롬반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