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09-07-22 13:24:21 조회 수: ‘5719’
* 아래 글은 피지에 다녀온 일행중 한 분의 후기입니다. 많이 기대하시고 또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
앞으로 피지에 관한 사진과 글을 더 올릴 예정입니다. 가져가실 때에는 꼭 리플을 남기시거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피지에 관한 사진과 글을 더 올릴 예정입니다. 가져가실 때에는 꼭 리플을 남기시거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7월 4일
이른 아침 눈을 떠서 밖으로 나왔더니 작은 연못의 연꽃이 아침 인사를 전해주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짐은 골롬반 지부에 맡겨 두고 나모시 마을(Namosi village)로 향했다. 오전 10시 이곳 피지의 수도 “수바” 에도 교통정체는 있었다. 시내를 어느 정도 벗어나 우리 모두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드리는 미사와 레지오 회합, 내 평생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하겠지.
그 시간 내가 받은 은총과 감동을 나의 부족한 글 솜씨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고나 할까…..
나모시 마을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 이건 차가 아니라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여기 저기서 튀어오르는 자갈, 좌우로 흔들리는 차, 먼지 때문에 문을 열 수도 없고…
| 얼마를 달렸을까? 약 3시간 후 우리의 목적지인 나모시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 나모시 마을은 피지에서 가장 높은 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50가구 정도가 생활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천주교 신자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전날 주교좌 성당에서 우리를 기다려 준 선교사 “마리아”의 집에는 우리를 맞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많은 마을 분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모두 흩어져서 이곳 주민들의 집에서 하루 밤을 자게 되어있었고 우리를 일일 가족으로 맞이 할 분들께서는 들풀과 꽃으로 환영 목걸이를 준비해서 목에 걸어주셨다. |
| 환영행사 후 우리는 밖으로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특별 손님으로 추장집도 방문하고 성당과 학교에도 가 보았다. 성당은 건물이 오래되어서 빗물이 들어올 정도였다. 그래서 새 성전 건립을 위해 20년 동안 애쓰고 있지만 겨우 뼈대만 엉성하고 올라간 상태였다. 학교는 역시 성당옆에 있었는데 교구에 소속된 것으로 각 교실에는 성모님이 모셔져 있었고 수업중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교실을 개방해주셨다. |
점심 식사 후 각자 가족이 되어 하루밤을 지내게 될 가정을 방문하였는데 내가 묵을 집은 “셀리타”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엄마로 3살된 베드로와 잘 생긴 남편 “EPINERI” 이렇게 세 식구가 오손 도손 모여사는 행복한 가정이였다.
베드로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베드로가 피지어만 할 수 있고 영어를 하지 못해서 몸짓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쇼 아닌 쇼를 했다. 석양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다시 돌아보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불라(Vula)”를 외치며 자기집에 들어오기를 권했다. 때론 웃음으로 응수하고 때론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뒤를 보니 어린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졸졸 따라 오고 있었다.
| 나모시는 다른 마을보다 가난하지만 사제와 선교사들의 영향력으로 교육열을 그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밤 늦은 시간, 일일 가족이 되어 “셀리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이 곳까지 데려다 놓았을까?, 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올바른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눈을 뜨니 “셀리타”는 벌써 아침 준비로 여념이 없었고 구름가득하고 안개가득한 나모시의 조용한 아침은 닭 우는 소리와 아이들의 분주함으로 시작되었다. |
7월 5일
드디어 이별의 시간 마치 자기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애틋함을 가득담은 그 분들의 눈빛을 차마 바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오던 그 순간 나의 모습이 그려져 벌써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정말 그 분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정성 그리고 이방인을 순수함으로 받아들여준 따뜻한 환대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모시 마을을 떠나 시내로 향하는 길 한 동안 우리 모두는 말을 아끼고 마음으로 나누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하늘도 아시는지 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 오전 8시 미사 미사 시간 다시 3개 국어가 사용되었다. 피지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달랐지만 그 시간 우리의 마음만은 하나였음을 감히 고백하고 싶다. 가족이 되기에 하루는 턱 없이 부족했지만 우리는 함께 교류할 수 있었고 서로가 진심으로 위하고 있음을 깨닫을 수 있었다. 자기 집을 방문해서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자 준 우리의 열린 마음과 친철함에 감사한다고 하셨는데 그 감사는 당연히 우리가 드려야 할 몫이였다. |
드디어 이별의 시간 마치 자기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애틋함을 가득담은 그 분들의 눈빛을 차마 바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오던 그 순간 나의 모습이 그려져 벌써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정말 그 분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정성 그리고 이방인을 순수함으로 받아들여준 따뜻한 환대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모시 마을을 떠나 시내로 향하는 길 한 동안 우리 모두는 말을 아끼고 마음으로 나누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하늘도 아시는지 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