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손길도 치유가 필요합니다_안재선 제이슨 신부

2026-05-15T15:29:48+09:00

글  안재선 제이슨 신부
사진 제공: 주한필리핀대사관

2026년 4월 22일, 서울에 있는 필리핀대사관 안, 필리핀의 국민 영웅 호세 리잘 의 이름을 딴 호세 리잘 홀에서는 어느 따뜻한 저녁, 조금 특별한 시간이 조용히 펼쳐졌습니다.

'예술과 함께하는 치유와 기도의 밤'은 대사관과 연결된 필리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색채와 기억, 창의성, 기도, 그리고 치유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탈리아 근무를 마치고 최근 한국에 부임한 베르나데트 페르난데스 대사가 이 자리를 이끌었으며, 이 모임은 단순한 미술 활동을 넘어 사람다운 쉼과 영적인 휴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회 인사에서 페르난데스 대사님께서는 외교, 영사 업무, 이주민 사목 안에서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영적 황폐함(desolation)"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주민들을 돌보는 손길도 지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위기 상황을 돕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동행하는 손들 역시 말없는 피로를 품고 살아갑니다.

워크숍 진행자로서 저는 참가자들을 비주손, 즉 익숙하지 않은 손을 사용하는 간단한 미술 작업으로 초대했습니다. 피카소, 마태오 복음 18장 3절의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노자 (Lao Tzu)의 지혜를 함께 나누며, 우리는 두려움 없이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다시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한때 안전하고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장소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매우 진실한 그림들이 탄생했습니다. 웃음과 침묵, 색채와 성찰이 함께 흐르며, 호세 리잘 홀의 분위기는 점차 형식적인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만나는 공간으로 변해갔습니다.

마지막 갤러리 워크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더 이상 직책이나 역할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억과 연약함, 기도와 색채를 통해 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녁은 몸의 감각을 깨우는 마침 기도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모두는 하나의 조용한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주민들을 돌보고 동행하며 섬기는 그 손길 역시, 숨 쉬고 기억하고 창조하며 치유받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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