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등록일: 2012-06-15 09:50:05 조회 수: ‘5845’
| [선교지에서 온 편지] 페루(하) – 잉카의 후손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이사 65,25)
박재식 신부 (안동교구)
|
| “빠드레 또마스는 정말 행복합니다”
2006년 한국으로 휴가를 오기 전 한달여 동안 꾸스코주에 있는 시꾸아니대목구(pleratura sicuani)본당을 방문해 페루의 시골 마을을 체험했다. 같은 페루지만 사람들 피부색부터 시작해 언어, 풍습, 기후까지 모든 것이 리마와는 너무나 달라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해발 3800m에 자리 잡은 마을은 우리나라 1960년대 시골마을과 비슷하다. 도로는 비포장이고 집은 초가집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영양 부족 때문인지 사람들은 작고 가냘프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가 지면 온 마을이 어둠과 적막에 휩싸인다. 하지만 인심은 넉넉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초대해 와띠아(감자구이)를 대접하고, 고마움의 표시로 사탕이나 과자를 건네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고 손만 내민다. 영락없는 우리나라 옛 시골 사람들 모습이다.
|
![]()
|
폭력 마을이 가고 싶은 마을로 바뀌어 70년동안 본당신부 없었던 산 속 마을 식당·기숙사 운영하며 문제 차츰 줄어
|
| #예수님께서 계셨다면 이곳에 하루는 22살 청년이 성당에 찾아와 혼인미사를 하고 싶다며 세례증명서를 떼 달라고 했다. 내가 세례대장을 내밀며 “직접 찾아보라”고 하자 청년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문맹인 젊은이가 있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밤에는 한 여인이 젖먹이 아이를 등에 업고 성당을 찾아왔다. 한 눈에 봐도 남편에게 매를 맞은 것 같았다. 그는 내게 “하루 밤만 쉴 곳을 제공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나는 성당을 지키는 책임자에게 여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당부했다.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하기에 일주일에 3일 정도만 교육이 이뤄진다. 식사는 매일같이 추뇨(말린 감잣국), 찐 감자, 볶은 감자, 콩 등으로 해결한다. 축제일이나 돼야 양고기를 먹기에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다. 편지를 보낸 후 나는 산 속으로 올 수 있게 됐고, 지금까지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열심히 사는 일꾼은 아니다. 다만 운동과 춤, 여행을 좋아하는 약간 게으른 사제다. 하느님께서는 일꾼으로 열심히 살라고 산 속으로 초대를 하신 듯하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칭 ‘빠드레’ 요즘은 한국이나 유럽에 여행을 가도 이 산 속 생활이 그립다. 키도 작고 냄새도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 내게 재잘거리며 뛰어와 안기는 아이들, 오후에 사제관을 방문해 공부도 하고 함께 운동할 것을 권하는 사람들, 빵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지금은 폭력 사건도 점점 줄고 이탈리아, 미국, 한국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인류 공동체’라는 말을 실감한다. 방문한 이들이 “빠드레 또마스는 정말 행복하시겠습니다”하고 말하면 “맞습니다. 아주 행복합니다.”하고 대답한다.
|
| * 박재식(토마스, 안동교구) 신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지원사제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페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