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본다면_안인성 패트릭 신부

2022-12-23T09:46:07+09:00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본다면

글  안인성 패트릭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본지 편집장

『골롬반선교』 2022년 겨울호(통권 제123호) 2~3쪽

저는 복음서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매력적으로, 솔직하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성 베드로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아보았던 때와 같이 진정한 통찰의 순간을 경험했음에도 개인으로서나 제자 단체로서나 일관되게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지위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약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을 막고, 일터에서 잠들고, 가장 절실한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심지어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이러한 명백한 단점을 가진 제자들의 모습과 우리 자신을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였던 제자들(복음서 표현으로 "그와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지만, 예수님을 끊임없이 실망시켰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큰 위안을 얻습니다. 복음서는 제자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약점과 실패를 정직하게 묘사했는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실패했다고 해서 비난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그 이상 무언가가 되도록 늘 초대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들로서 우리와 이웃들 또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능성을 지녔음을 믿도록 초대받습니다.

성 베드로와 유다를 비교하는 것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겼고 베드로는 예수를 공개적으로 부인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예수를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는 범한 죄가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이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주님과 화해할 기회를 누리지 않고 자살로써 용서의 가능성을 영원히 차단했습니다. 반면, 자신의 실패를 직시했던 베드로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장면(18,12-27)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세 번 질문하시는 장면(21,15-19)이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대조적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베드로의 반응이 우리 모습과 닮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용서를 받고 양 떼를 돌보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 바오로의 회심 이야기(9,1-22)에서도 비슷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초대 교회 신자들을 박해한 이었으나(8,1-3), 주님을 만난 후 "일어나서…"라는 도전을 받습니다(9,6). 이는 용서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용서는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기본인데도 그 역동성이 교회에 의해 종종 잊히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또, 사람의 선함을 신뢰하기보다는 죄책감을 더 강조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죄에 대한 집착은 우리가 (바오로처럼) 일어나서 (베드로처럼) 하느님의 양 떼를 먹이는 것을 너무나 자주 방해합니다.

이번 겨울호를 펴내며 위대한 성탄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갓 태어난 아기 얼굴을 바라볼 때 아기 눈에 비친 희망과 신뢰, 기대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갓난 아기를 바라보시듯이 우리를 바라보시며 안아주십니다. 우리 또한 그 눈길을 느끼며, 일어나서 양 떼를 먹여 살리러 함께 걸어갑시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발행함: 2022년 12월 20일,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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