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이야기_하느님께 늘 희망을 두어라_정의균 가롤로 신부

하느님께 늘 희망을 두어라

글  정의균 가롤로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인천 출신이며 2014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얀마 선교에 이어 2017년 피지 공화국으로 파견되어 바누아 레부 섬 람바사 시 성가정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 찹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첫 등굣길에 오르는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걱정 반 기대 반 설렘 가득 찬 얼굴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분들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버스 한 대 그리고 또 한 대가 도착할 때마다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이번에는 내릴까 하는 기대감에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버스를 바라보았던 기억은 다들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새 본당으로 부임한 그날, 제 마음은 마치 초등학교 등굣길에 처음 오르는 1학년 꼬마 아이와 같은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남태평양 피지 공화국의 수도 수바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배로 4시간, 또다시 버스를 타고 3시간 달려오면 피지 북쪽 섬에 있는 이곳 성가정 성당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골롬반회 사제들이 몇십 년 동안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셨습니다. 후임자로 들어간 저는 본당 규모에 깜짝 놀랐는데, 관할 구역이 서울특별시 면적의 3배(2,004㎢)가 넘기 때문입니다. 전체 신자 수는 3,000여 명이며 공소 열 개를 가진 본당입니다.

본당 신자의 가정 방문 때

제가 본당에 도착하고 적응이 되어 갈 때 쯤 피지에 우기가 시작되었는데요. 성탄절을 한 주 앞두고 강력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제가 있는 북섬 전체를 덮쳤습니다. 대부분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양철 슬레이트를 지붕으로 얹은 피지의 집들은 이 강력한 태풍의 영향으로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본당 관할 고등학교에 대피소를 마련하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마을 사람들이 속속들이 들어오는데. 한 가정 그리고 또 한 가정이 대피소에 도착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부유한 가정 들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 받은 가정들임을 잘 알고 있어서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태풍에 날아간 가정집

피지를 덮친 태풍은 집 전체를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성탄절이 찾아왔고 저희 본당 신자 분들은 마치 루카복음 2장에 언급된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모습 즉,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그 순간 조그만 방 한 칸 없이 구유에 뉘어진 아기 예수님과 같았습니다. 성탄 전야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많은 신자분들이 눈물을 훔치며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수해 복구가 거의 다 되어갈 때쯤, 또 다른 태풍이 피지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북섬 사람들은 긴장하며 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태풍이 강력한 바람으로 집을 무너뜨리고 지붕을 날려 버렸다면, 두 번째 태풍은 물폭탄을 떨어뜨려 시내 저지대가 홍수로 인해 침수되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습니다.(*편집자 주: 비교적 안전한 나라였던 피지에도 기후변화로 전례 없는 대형 태풍과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물에 잠긴 도로

제가 지내고 있는 사제관은 약 1.2m 정도 침수되어 모든 가전제품이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성전에도 비가 들어차 보좌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신학생과 함께 2층 건물인 교육관으로 대피해야 했습니다. 동네 1층 건물에 살고 있던 이웃 주민들은 본당 교육관으로 대피하였고, 동네 강아지들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본당 교육관은 마치 ‘노아의 방주’ 같았습니다. 물이 빠지기까지 3일 정도 걸렸는데, 수도물도 끊기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지냈습니다. 마을 저지대 임대 주택들의 사정은 더욱 더 심각했는데요. 가난속에 살아온 이들에게 홍의 피해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삶의 의지를 꺾고 말았습니다.

물에 잠긴 성당(하늘색 지붕)과 사제관

성당 안쪽 마당. 왼쪽은 사제관, 오른쪽은 성당

흙더미에 잠겼던 성당 의자를 빗물에 씻고 있는 신자들

홍수 발생 후 며칠 뒤에 기도 중에 성경 말씀이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께 늘 희망을 두어라” (호세 12,7). 본당 신자 분들과 이 말씀을 함께 나누었고, 서로 의지하며 한 마음 한 몸으로 수해 복구에 동참했습니다. 비교적 피해가 적은 구역의 신자들은 피해가 심한 구역 가정을 방문해 수해 복구를 도왔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신자분들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심을, 그리고 하느님의 희망이 본당 신자분들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당 관할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봉헌한 부활 성야 미사

정신없이 수해 복구를 하며 몇 달을 보내다 보니 부활절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마을의 교우들은 본당 관할 고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성주간을 함께 보냈고, 몇몇 마을 신자 분들은 일주일 동안 고등학교 교실에 여장을 풀고 성주간을 더욱더 의미 있게 보냈습니다. 부활 성야, 부활 초에 당겨진 그리스도의 빛이 신자들 손에 든 초에 나누어질 때, 저희는 참된 희망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어려움을 함께 겪으면서 본당 신자 들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빛을 나누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우리의 참된 희망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골롬반선교』 2021년 여름가을호(통권 제119호) 24~25쪽

By |2021-09-15T10:43:30+09:002021-09-07|골롬반 소식, 선교일기|0 댓글

골롬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이웃에게 들려주세요.

제목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