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만 신부의 사복음서 산책 ❷ 마르코 복음서

사복음서 산책 ❷ 마르코 복음서
-주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정진만 안젤로 신부

천주교 수원교구. 독일 보훔 대학교에서 <마태오복음>을 주제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로서 <공관복음>, <가톨릭 서간>, <성경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분량도 적고 내용도 단순할 뿐 아니라 고유 자료 역시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마르코 복음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오래된 복음서’라는 주장에서 비롯하는데, 이러한 입장(‘마르코 복음 우선설’)은 ‘공관복음의 문제’, 곧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사이에서 발견된 유사점과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성 마르코 복음사가> 린디스파른 복음서 93b쪽, 700년 경, 34×25cm, 영국 대영 박물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wikimedia commons

고통받는 마르코 공동체
마르코 복음서는 1세기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제2차 유다-로마 전쟁(66~70년)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64년)입니다. 두 사건은 마르코 복음서의 기록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만,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가 고통과 고난을 겪는 신앙 공동체를 위하여 ‘예수 이야기’를 기록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한 증거로 환란과 박해에 대한 경고(4,17), 예수를 따르고자 자신의 소유를 포기한 이들이 받게 될 박해 예고(10,30 *마태 19,29; 루카 18,29 비교),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로마 혹은 유대 당국에 의하여 받게 될 법적 신문(13,9-13)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전쟁 피해 상황이나 박해의 규모와 성격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고통’은 마르코 복음서의 청중 또는 독자를 규정짓는 중요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들은 혼란과 박해 속에서 고통을 체험하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고통이 하느님과의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며, 신앙 공동체의 본질적 성격, 곧 ‘하느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워버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고통’이라는 쓰라린 체험을 통하여 마르코 공동체는 예수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함으로써 보여준 승리의 영광과 그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1)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 공동체를 위한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복음사가는 이미 복음서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1,1). 이후 예수의 세례(1,11)와 거룩한 변모 사건(9,7)에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정체성이 직접 하느님으로부터 확인되며, 마지막 예수의 죽음의 순간에 한 백인대장은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세례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 이르는 예수의 생애를 소개하고, 예수가 피할 수 없었던 수난과 죽음을 복음서의 중심 주제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하느님의 왕권에 참여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악을 물리치면서 동시에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아들입니다. 그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8,33 참조). 예수는 섬기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생명을 주기 위하여 파견되었고(10,45 참조), 죽음 앞에서 먼저 아버지의 뜻을 선택했던(14,36)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
예수가 선포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하였고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먼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할 때 시작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완성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아들 예수가 그 수난의 길을 직접 걸어갔으며, 제자들을 그 길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34 참조)

정진만 신부의 사복음서 산책 ❶ 마태오 복음서 읽기

『골롬반선교』 2021년 여름가을호(통권 제119호) 16~17쪽

By |2021-10-05T10:12:39+09:002021-09-21|골롬반 소식|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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