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기억하기
글 안인성 패트릭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본지 편집장『골롬반선교』 2021년 겨울호(통권 제120호) 2~3쪽
한반도에 존재하는 난해하고 고도로 군사화된 분단 현실의 맥락에서 고작 화해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 눈에는 매우 순진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에 대한 다수의 지배적인 이야기 때문에 화해 이야기는 대개 무시되고 얼버무려집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국천주교회는 현재도 진행 중인 분단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화해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교회의는 민족화해를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여 한반도의 슬프고도 골치 아픈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쩌면 화해가 아닌 것을 진술하는 편이 이해하기 더 쉬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화해의 참 의미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화해란, 있었던 일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쯤으로 이해합니다. "마음에 두지 말고 그만 잊어버려", "그냥 놔두라", "과거에 사는 것을 그만두라!" 이런 말을 우리는 자주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발언들은 대부분 잘못되었으며 결국 상처와 절망감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의학적으로 비유하자면, "그만 잊어버려!"는 부러진 다리를 무시한 채 고통을 무디게 하기 위해 진통제만 복용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이 문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단편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더 악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그저 좋은 마음으로 참아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말씀은 나와 다른 사람을 참된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맞아들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화해의 문을 여는 열쇠는 잘 기억하는 우리 능력에 있습니다. 잘 기억하는 것은 상처와 고통 속에 머물며 억압에 갇혀 복수할 기회를 찾는 것과는 다릅니다. 잘 기억하는 것은 고통을 올바르게 인정하면서 의식적으로 자유롭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방어적 태도와 복수를 거부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상대방의 인간성人間性을 받아들이는 것이 '잘 기억하기'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나의 인간성이 타인의 인간성을 (사람 인人에서 보듯이) 뒷받침할 뿐 아니라, 들어 높인다는 심오한 믿음을 뜻합니다. 타인의 인간성을 드높이면 나의 인간성도 더불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화해를 위하여 잘 기억하려는 노력은 십자가에 못 박힌 처형을 의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화해는 완전히 실패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가능성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고 신뢰하는 바는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화해가 실패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로 가는 길입니다. "잘 기억해서, 화해하기를 선택"하는 일은 우리 앞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번 겨울호에서는 한반도 화해를 위한 여정을 이미 걷고 있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골롬반회 남승원 신부가 평화사목을 소개하였고, 예수회 김연수 신부는 광복 이후 북한의 종교 현황을 살피면서 북한의 복음화를 위한 고민과 성찰을 나누었으며, 살레시오회 정현희 수녀는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을 동반하며 느낀 기쁨을 들려주었습니다. 특별히 세 명의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정착 분투기를 들을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이 밖에 수원교구 정진만 신부가 루카 복음서를 알기 쉽게 소개했고, 노혜인 선교사는 생태적 회심의 삶을, 류선종 신부는 대만 선교 이야기를 전했으며, 골롬반회 총장을 지냈던 토마스 머피 신부가 한국 선교를 통해 받은 은총의 열매를 나누었습니다.
복된 성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한반도를 비롯한 이 지구와 그 안에 사는 피조물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