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야기] 언어의 씨앗, 희망의 순례길에서_김진욱 요한 사도 신학생

2026-07-13T14:51:46+09:00

언어의 씨앗, 희망의 순례길에서

– 파키스탄에서 보낸 1년의 언어 배움과 순례 이야기
글 김진욱 요한 사도 신학생(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파키스탄에서 언어를 배우며 지낸 1년은 희년의 해석을 새롭게 가르쳐 준 시간이었습니다. 희년은 단지 '은총의 충만함'이 아니라, 얽매임에서 풀려나 하느님께서 여시는 새로운 시작에 자신을 내맡기는 용기라고 믿습니다. 저는 낯선 땅에서 우르두라는 언어를 배우며 이곳 사람과 문화를 배우고, 희망의 순례자로 초대받았습니다. 그 여정 한가운데서 곧 다가올 성탄은 언제나 작고 낮은 시작으로 오시는 주님의 방식인 연약함 안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의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연약함에서 시작된 질문들
한국을 떠나기 전 파견미사에서 들은 세 가지 질문 – "선교사의 삶을 희망하는가? 사제의 삶을 희망하는가? 골롬반의 삶을 희망하는가?"- 은 제 여정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파키스탄에 와서 겪은 두 사건이 이 질문을 깊게 새겨 주었습니다. 첫째는 경찰 조사였습니다. 최근 중국인을 겨냥한 테러 때문에 저도 의심 대상이 되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유가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음식 알레르기였습니다. 농약이 남아 있던 채소를 먹고 얼굴에 심한 증상이 생기자, 낯선 땅에서의 무력감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동시에 깨끗한 물조차 구하지 못해 병으로 고통받는 현지인의 처지가 더 생생히 다가왔습니다. 이 두 경험은 저를 깊은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인간의 보편적인 조건, 즉 연약함과 취약성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기 예수님께 향했습니다.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으로 우리와 함께 오신 그분은 제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용기와 희망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이곳에서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어 – 기술을 넘어 '관계'가 되기까지
우르두어는 존중과 예의를 섬세히 담아내는 언어입니다.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 문법은 익숙했지만, 듣기와 말하기의 벽은 높았습니다. 수업과 일상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갔고, 모르면 되묻고, 만나는 이들과 우르두로 인사를 나누며 작은 성취를 누렸습니다. 머리(Murree) 지역에서 말 공부를 마칠 즈음, 본당 청소년들과 거리를 걸으며 대화한 기억은 특히 소중합니다. 서툰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웃으며 이어 준 그 친구들 덕분에 자신감과 설렘이 생겼습니다. 언어는 완벽함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마음을 건네는 다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언어를 배우는 동안 생기는 긴장, 평가받는 두려움, 자기 압박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다뤄 보려 했습니다. 말을 막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다시 시작하고 인내와 꾸준함을 배우고, 작은 진전을 기뻐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결국 소통의 다리, 사람을 향해 건네는 손이었습니다.

만남의 은총 – 식사, 웃음, 그리고 공동체
이 일 년 동안 저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함께 생활한 골롬반 공동체와 본당 신자들, 이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 손짓, 따뜻한 환영 속에서 저는 하느님의 얼굴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한번, 제가 김치를 담그고, 김밥과 잡채를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은 날이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 성당에 나오는 한 어린이가 제가 만든 김밥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게 뭐예요?"라고 묻던 순간입니다.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눈빛 속에서 음식은 단순한 나눔을 넘어 문화와 관계의 다리가 됨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나눔은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내 수고를 알아줄까?" 하는 인정 욕구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식사에서 웃음 속에서 분명히 따뜻함을 느끼면서도, 가끔은 제 마음 안에 마르타 같은 불평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저는 요리가 단지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 실천의 방식임을 배웠습니다. 라호르 시에 있는 골롬반 선교 지역에서 미사를 드리며 선배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되새길 때, 또 크리스마스를 공동체와 함께하며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때, 저는 언어와 음식, 나눔이 모두 사람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단순함이 준 자유 – 몸과 환경의 회심
짜파티, 달, 커리로 대표되는 파키스탄의 소박한 식단에 적응하며, 저는 과식과 과잉 소비의 습관을 성찰했습니다. 야식을 줄이고 걷기와 운동을 시작해 체중이 줄었고, 단순 소박한 음식이 주는 자유를 체험했습니다.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생물다양성이라는 교회의 과제와 제 삶이 이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선교의 현재와 성탄의 빛
파키스탄에서 골롬반회의 사도직은 정치·경제·안보의 불확실성 속에 있습니다. 또한 골롬반회의 두 우선 과제 – 이주와 생물다양성 – 는 파키스탄 골롬반회의 방향과 자원 배치를 새롭게 요구합니다. 회원 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흩어진 개인 활동보다 공동의 전략과 시노달적 경청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저는 이 전환의 시간에 성령의 이끄심을 신뢰하며, 동료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누는 일로 함께하고자 합니다. 성탄은 언제나 작은 시작으로 큰 희망을 엽니다. 서툰 우르두 인사, 시장에서 나눈 소박한 미소, 공동체 식탁의 웃음 같은 작은 순간들이 제게 복음의 길이 되었습니다. 저는 곧 사목 실습으로 나아갑니다. 유창함보다 진심, 속도보다 동행, 계획보다 경청을 선택하며, 희망의 순례자로 한 걸음씩 내딛고자 합니다. 이 길을 가능하게 해 주신 한국의 골롬반 후원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동반이 제 연약함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희망의 순례길을 걸어 주시길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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